with the memory of the first, that first one
바로 그 처음의 것, 처음의 인상과 느낌과 처음의 솔직함으로 처음의 순수함을 기억하길
2012년 5월 27일 일요일
의연함에 대하여
의연하다: 전과 다름이 없다.
하루하루의 삶이 의연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무수한 일들과 새로 생겨나는 고민들, 또한 웃음과 즐거움, 사랑하는 사람들로 하루하루는 결코 의연하지 않다.
그러나 때로의 마음을 훅 흔드는 심술궂은 바람에 의연히 웃는 여유를 가지고 싶을 뿐이다.
또한 지금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력하고 있고.
'고민할게 얼마나 많은데 그까짓 것으로 고민하냐'
사실 이 마음은 싫다.
하루하루 새로 부닥치게 되는 것들이 고민의 글자들이고, 마음에는 때로 정리하고, 지우고 써내려간다고 바빠질 때도 있다. 또한 그 가운데 많이 성장하기도 하고.
'까짓 것'이라는 말은 괜히 미안한 마음을 들게한다, 내가 너무 소홀했던 것은 아니가하여.
그래서 그것 또한 마주하고 싶고, 존중하고 싶다만, 때로는 의연함의 웃음으로, 안을 수 있는 너그러움과 깊음, 넓음을 가지고 싶을 뿐이다.
.. 욕심인가.
커튼이 나풀거리는 바람이 방을 식혀주고,
옆 부엌에서 전해오는 빵 굽는 냄새들이
마음을
그저 좋게하는 오후다.
2012년 4월 6일 금요일
Rome 고대와 르네상스 시대의 협주곡은 울려퍼지고..
'그래, 나 여기 다녀왔소!!' 사진들
:)
너무나도 우연히 만났던 우리 희정언니!! :)
역시 세상은 우리에게 좁다!
우리의 토스카니 와인, 치안티 와인.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와인의 향으로 마무리했다.
아, 그리고 우리 동전 던졌다. 다시 돌아오지 싶다. :)
Second Mamma-mia: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San Giminano
San Giminano, 처음 들어 섰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7시간 동안의 트랙킹을 마치고 드디어 저 멀리서 보이던 산 지미냐노가 가까워 지더니 정말로 도착한 것이다! 긴 여정을 마치고 사람이 사는 마을을 발견하고 입성하는 나그네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우리의 산 지미냐노의 성곽으로의 입성은 감동이었다! 성곽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마치 중세시대의 시장같은 모습을 선사했다. 맑은 하늘 아래, 청아한 그늘을 드리우는 성곽과 중세시대 마을의 벽들 아래 우리의 땀은 시원하게 식었다.
산 지미냐노에 도착했다. 산 지미냐노는 성곽안에 그 때의 시간을 고이 간직하듯 우직히 언덕위에 서 있었다. 중세시대때 귀족들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서 경쟁하듯이 세웠다는 탑들로 저 멀리서도 산 지미냐노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관광객이 토스카나와 산 지미냐노의 전경을 바라 보러 올라가는 전망대로서의 역할을 할 뿐이다. 당시의, 순간의 권력과 권세는 시간이 흐르면 아주 생각지도 못했던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것, 마치 권력 경쟁의 이야기는 무색해진 우뚝 선 탑들 처럼 말이다.산 지미냐노에서 내려다 보이는 토스카나의 고즈넉한 시골 풍경. 어느 나라나 시골은 편안하고 조용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이 마치 고향에 온 듯 편안하게 해 주는 토스카나의 시골 풍경이다. 이곳저곳 멋지게 선 사이프러스 나무가 보이고, 옹기종기 펼쳐진 포도밭들. 어제의 피렌체의 관광도시의 분주함도, 소음도, 매연도 이곳에는 없는 조용히 숨겨둔 보석같은 곳이다. 이곳만을 아는 관광객들로 조곤조곤 모여있는 것 같은 마을, 산 지미냐노. 모두들 가족과 함께, 강아지와 함께 여행을 온 사람들이었고 기차역도 없는 토스카나의 시골 한 중간에 우뚝 솟은 산 지미냐노의 아늑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거리 곳곳, 골목 마다마다에는 하프를 연주하는 이, 기타를 연주하는 이, 성악을 하는 이들로 낭만적인 분위기를 한껏 자아내고 있었다.
아, 그리고 이날은 아빠의 생신이었다. 걷는다고 아주 새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아,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 부모님의 도움으로 이렇게 멋진 풍경, 맛있는 거 먹고 잘 다니면서 생신 한번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하는 나의 모습이 이렇게 미울수가 없었다. 속상해 하며 성당앞에 앉아 있는데, 작고 어린 아들과 함께 성당 앞 계단에서 피자를 먹고 있는 키 작은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재잘재잘 거리며, 피자도 잘도 먹는 어린 아들과 묵묵히 아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함께 피자를 먹는 아버지의 모습. 아빠가 생각났다. 어릴 때 아빠는 어린 나를 데리고 많이 여행을 다니셨다. 엄마께서 일하시는 동안 근처 산에도 가고, 휴게소에서 맛있는것도 먹고, 아빠랑 여행을 하면 항상 엄마랑 있을 때 먹지 못했던 그런 맛집에서의 음식을 즐겁게 먹어서 좋았다. 그리고 아빠랑 여행할 때는 뭔가 더 어리광을 부릴 수 있을 것 만 같은 어릴때의 느낌이 기억난다. 아빠가 무척 보고싶고 이제는 이렇게 커버려서 혼자 여행을 다니는 나의 모습을 보며 괜히 이렇게 훌쩍 커버린 것이 아빠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슬펐다. 보고싶다, 아부지.
여기 감동의 주인공이 한 분 더 계신다. 조용한, 인적 드문 곳에서 피리를 부시는 아저씨. 오케스트라의 반주를 틀고 거기에 맞추어 피리를 부시는 아저씨의 연주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새소리와 나무들이 살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인적 드문 이 공간을 너무나도 신비롭게 메꾸고 계셨다. 아저씨의 꿈은 멋진 오케스트라와 협주를 하는 것이리라. 그렇기에 아저씨의 연주는 더욱 마음을 애잔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아저씨도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안타깝게 생각하지 않을가, 적어도 지금의 내가 아저씨라면 그렇게 생각하고 머뭇, 부끄러워 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아저씨는 신나게 그 풍경을, 분위기를 멋지게 즐기고 있었고 그 모습은 너무나도 멋지고 당당한 그림이었다.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있고 즐길 수 잇는 것에는 당당해야 한다는 것! 그 누가 뭐라해도 내 스스로 즐기고 당당하게 누리며 표현할 수 있을때 그 누구의 발언도 무색해질 멋진 무대가 된다는 것.
첫 맘마미아, First Mamma-mia: Hit the road under the Tuscan sun!
Hit the road under the Tuscan Sun!
토스카니의 태양아래 우리의 첫 도보여행이 시작되었다.
피렌체에서 지역열차로 50분가량 떠러진 체르탈도(Certaldo)에서 산 지미냐노(San Giminano)까지, 오늘의 목표는 총 약 7km의 도보길을 가는 것이다.
시작은 즐겁게! :) 사진도 찍고, 누가 그랬던가. 여행 초기에 최고로 사진을 많이 찍고 시간이 갈 수록 사진의 장수가 급격히 줄어든 다는 것을.
이렇게 걷고 또 걸었다. 오르막길도 많이 나타났다. 토스카나의 시골로 접어드는 것이다.
포도밭과 사이프러스 나무들로 펼쳐지는 토스카나의 풍경들. 때때로 한국의 시골 풍경처럼 아늑함과 정겨함을 담지만 또한 동시에 사이프러스 나무들은 '여기 토스카나요' 하는 것처럼 토스카나의 이국적인 모습을 그려주었다.
덥지만, 팔이 탈가봐 잠바를 계속 입고 갔다. 더워, 힘들어, 다리 아파..
저기, 산 지미냐노의 성이 보인다! 드디어 조금만 더 가면 도착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옛날 중세시대 때 나그네가 머무를 수 있는 성을 발견했을 때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사실 체르탈도에서 출발해서 길을 많이 헤맸다.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걸으면서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이 맞을까 수없이도 커지는 불확실성 속에서 발걸음을 재촉하던 터였다. 목적지가 눈 앞에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안도감을 주었다.
도착, 산 지미냐노(San Giminano).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굳이 걸어서 그 길을 가느냐고 많이들 물었다. 산 지미냐노 게스트 하우스 아저씨도 가장 처음 'Why? Mamma-mia!' 라며 황당해 하셨다. 우리의 첫 맘마미아 순간이었다. 사실 걸어가는 길 내내 때때로 나타나는 자동차들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배낭 짊어매고 저벅저벅 걸어가는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운전자들도 많았다. 왜 걷냐면, 걷는 것이 좋아서 걸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 걸으면서 여행을 하면 많이 보고,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걸으면서 여행을 하면 나의 몸이 이 곳을 기억할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다. 걸어가면서 길을 물으며 만나는 동네 주민들, 사람들도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리고 또 언제 이렇게 무모하게 걸으면서 여행할 수 있겠는가! 건강한 다리로, 건강한 몸으로 이렇게 걸으며 바람과 흙과 풍경을 누리고 새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즐겁다. 힘들때 산들바람에 쉬면서 쨈하나 안 발라도 고소한 식빵을 먹을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즐겁다.
이렇게 걸으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결국 나의 몸은 내가 지켜야 하는 최후의 보루라는 것이다. 나에게 차도 없고, 그 어떠한 것이 없어도 몸만 성하다면, 건강하다면 그 어떠한 곳을 못 가겠는가. 나에게 이렇게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는 두 다리와 몸이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그래서 몸이 건강한 이상, 두 다리 이렇게 건강한 이상 앞으로도 열심히, 씩씩하게 걸어갈 것이다. 목적지를 향해서! :)
Duomo di Firenze
피렌체의 두오모이다. 원래는 저기 보이는 붉은 색의 돔이 없었다고 한다. 모두들 안타까워 하는 가운데 당시 메디치 가문이 브루넬레스키를 후원하여 돔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 브루넬레스키는 고대로마시대의 건축양식을 구상하고 주장하던 건축가였는데 많은 이들이 브루넬레스키를 무시하였다. 모두들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어쩌면 위험할 지도 모르는 도박을 브루넬레스키에게 건 것이다. 브루넬레스키는 그 어떠한 지지대 없이 완벽하게 돔을 건축하였고 이 돔은 현재까지도 완벽하게 보존되어지고 있다.
피렌체 두오모에서 내려다 보이는 피렌체의 전경. 오후 5-6시 쯤이어서 길어지는 석양의 모습에 더욱 황색빛으로 황홀하게 펼쳐지는 피렌체 도시의 모습이었다. 도시 전체가 붉은 색 지붕과 황토색 벽으로 지어져 있는듯 한 피렌체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나왔던 말 처럼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고 또한 머무르고자 하는 도시 같았다.
피렌체의 두오모이다. 원래는 저기 보이는 붉은 색의 돔이 없었다고 한다. 모두들 안타까워 하는 가운데 당시 메디치 가문이 브루넬레스키를 후원하여 돔을 지을 수 있도록 하였다. 브루넬레스키는 고대로마시대의 건축양식을 구상하고 주장하던 건축가였는데 많은 이들이 브루넬레스키를 무시하였다. 모두들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어쩌면 위험할 지도 모르는 도박을 브루넬레스키에게 건 것이다. 브루넬레스키는 그 어떠한 지지대 없이 완벽하게 돔을 건축하였고 이 돔은 현재까지도 완벽하게 보존되어지고 있다.
피렌체 두오모에서 내려다 보이는 피렌체의 전경. 오후 5-6시 쯤이어서 길어지는 석양의 모습에 더욱 황색빛으로 황홀하게 펼쳐지는 피렌체 도시의 모습이었다. 도시 전체가 붉은 색 지붕과 황토색 벽으로 지어져 있는듯 한 피렌체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나왔던 말 처럼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고 또한 머무르고자 하는 도시 같았다.
29.03.2012-05.04.2012 이탈리아 기행
일주일 동안의 이탈리아 기행이 끝났다. 이때까지의 그 어떤 여행보다도 육체적으로 많이 고단했던 여행이었다. 버스가 운행을 안해서 기차역에서 밤을 새야 했으며, 마지막날 비행기 시간이 너무 일러서 또 다시 공항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 했다. 많이 걸어다녀서인지 처음으로 걷는데 무릎이 아팠던 여행이기도 했다. 또한 로마와 피렌체의 건강하지 않은 공기의 상태하며.. 오슬로의 작고 조용한 도시의 분위기와 공기가 그리웠던 여행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친 몸으로 막 돌아온 지금, 피곤해 침대에 쓰려저 누워 있어도 바티칸의 조각과 회화 속에서 넘쳐흐르던 르네상스의 분수가 떠오르고, 피렌체의 황색빛 석양이 그려지며, 한국 시골같은 정겨움과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로 펼쳐지던 토스카니의 모습과 나그네에게 선물같았던 산 지미냐노가 떠오른다.
나의 여행 동행자, 이주연과의 어쩌면 20대, 지금 함께할 마지막 유럽여행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히려 맘마미아의 매 순간들 마저도 우리에게는 웃음과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가 더욱 크게 느껴졌던 여행이기도 했다.
맘마미아 여행, :)
즐겁기도 때로는 당황스럽고 힘들기도 했던 맘마미아의 순간들,
이 또한 이탈리아의 태양과 역사의 흔적들로 우리에게 그림처럼 남겠지.
Graz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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